Rotary International
로타리 소개
로타리는 회원이 모인 국제민간봉사기구입니다. 직업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클럽에서 만나, 지역과 세계의 일을 함께 맡습니다.
로타리는?
국제로타리는 비정부기구입니다. 적십자나 국경없는의사회처럼 재난 현장에 먼저 나가는 구조 단체와는 결이 다릅니다. 회원이 클럽을 만들고, 클럽이 지구와 국제로타리로 이어집니다. 라이온스, 키와니스와 같은 멤버십 단체입니다. 비영리라고 해서 모두 이런 기구는 아닙니다.
작은 톱니가 맞물려 큰 짐을 들어 올리듯,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비범한 일을 합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진실한지, 모두에게 공평한지, 선의와 우정을 더하는지, 모두에게 유익한지를 먼저 묻습니다. 정치와 종교를 내세우지 않고, 문화와 배경이 다른 사람을 회원으로 맞습니다.
지금은 200여 나라, 4만 6천 개가 넘는 클럽, 120만에서 140만 명의 회원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한국은 11존과 12존, 19개 지구, 약 1,600개 클럽, 6만 2천에서 6만 5천 명입니다. 부산 로타리클럽은 3661지구에 있고, 이 지구에는 약 60개 클럽과 2,700명가량의 회원이 있습니다.
클럽의 일은 회장, 차기회장, 부회장, 총무, 재무와 다섯 위원회가 나눕니다. 회원, 공공이미지, 로타리재단, 클럽관리, 봉사 프로젝트입니다. 직책은 일을 나누는 자리이고, 회원은 평등합니다.
두 개의 모토
Service Above Self
초아의 봉사. 그리고 가장 훌륭하게 봉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거두어들인다. 종교의 교리가 아닙니다. 향약과 두레처럼, 서로 도우면 두루 좋아진다는 약속입니다.
일곱 가지 초점
사업과 전문직, 지역의 리더가 클럽에서 만나 가까운 일과 먼 일을 함께 봅니다. 국제로타리는 그 일을 일곱 초점으로 나눕니다.
- 01평화 구축갈등을 줄이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식탁에 앉을 이유를 만듭니다.
- 02질병 예방과 치료예방이 닿지 않는 곳을 먼저 살핍니다. 소아마비는 그 일의 가장 긴 기록입니다.
- 03물과 위생깨끗한 물과 위생이 일상이 되도록 사업을 이어 갑니다.
- 04모자 보건어머니와 아이의 건강을 지역과 국제 협력으로 지킵니다.
- 05기본 교육과 문해력배우고 읽을 기회를 열어, 다음 세대가 스스로 서게 합니다.
- 06지역사회 경제 발전이웃이 오래 설 수 있는 일과 배움의 기반을 돕습니다.
- 07환경지금 쓰는 자리를, 다음 사람이 물려받을 수 있게 돌봅니다.
1905년 시카고
1905년 2월 23일, 시카고에서 변호사 폴 해리스, 광산 기술자 구스타부스 로어, 석탄 상인 실베스터 실, 재단사 하이렘 쇼리가 첫 모임을 열었습니다. 해리스가 원한 것은 거창한 기구가 아니었습니다. 배경이 다른 직업인이 아이디어와 우정을 나누고, 어린 시절의 마을처럼 서로 아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로타리라는 이름은 회원들의 사무실을 돌아가며 모인 데서 왔습니다. 1910년 8월 15일, 시카고 콩그레스 호텔에서 첫 대회가 열렸고 폴 해리스가 초대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의 얼굴은 좁았습니다. 오늘의 로타리는 그 바퀴를 문화와 배경이 다른 회원에게 열어 두었습니다. 1915년에는 키와니스가, 1917년에는 라이온스가 같은 시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휘장은 시카고 회원이며 조각가인 몬터규 M. 베어가 1905년에 마차 바퀴로 그렸습니다. 문명과 움직임을 뜻했습니다. 1920년 기술자 오스카르 비요르게가 톱니바퀴로 다시 그렸고, 1923년에 공식 휘장이 되었습니다. 톱니 24개는 하루 스물네 시간, 봉사에 쉬는 때가 없음을 말합니다. 살 여섯 개는 당시의 여섯 가지 목적입니다. 가운데 열쇠 구멍은 그 바퀴를 돌리는 회원 한 사람입니다. 로열 블루와 골드는 1929년에 정해진 색으로, 청렴과 높은 윤리, 나라 밖에서도 통하는 기준을 나타냅니다.
소아마비는 한 나라가 아니라 봉사단체가 앞장선 일입니다. 1979년 필리핀에서 어린이 600만 명에게 처음 접종했습니다. 1985년 폴리오플러스가 시작되었고, 1988년 세계보건기구, 유니세프와 함께 소아마비 퇴치 이니셔티브를 열었습니다. 회원들은 21억 달러 이상과 수백만 시간을 보태, 122개국에서 약 30억 명의 어린이 접종을 도왔습니다. 지금은 99.9퍼센트가 물러갔고, 풍토병으로 남은 나라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입니다.
1955년 조너스 소크는 백신을 만들고 특허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선택 때문에 백신은 아주 싼값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앨버트 세이빈의 먹는 백신은 1985년 폴리오플러스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세계 소아마비의 날은 10월 24일입니다.
“우리에게 로타리가 의미하는 바는 많지만, 세상은 우리가 이루는 성과를 통해 로타리를 알게 될 것이다.”
이어 온 약속
로타리는 처음부터 국제적이었고, 전쟁이 갈라 놓아도 다시 모였으며, 소아마비처럼 긴 일은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부산 로타리클럽은 그 약속이 이 도시에 닿은 자리입니다.
첫째
창립 16년 만에 여섯 대륙에 클럽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200여 나라, 4만 6천 개가 넘는 클럽입니다. 윈스턴 처칠, 월트 디즈니, 닐 암스트롱, 토머스 에디슨, 샘 월턴, 할랜드 샌더스도 그 회원 안에 있었습니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등의 클럽은 해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원들은 위험한 동안에도 비공식으로 만났고, 전쟁이 끝난 뒤 클럽과 도시를 다시 세웠습니다.
셋째
1979년 필리핀의 600만 명이 시작이었습니다. 1985년 폴리오플러스, 1988년 세계보건기구·유니세프와의 이니셔티브로 이어졌습니다. 1988년 125개국에 남아 있던 소아마비는,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풍토병으로 남아 있습니다.
넷째
부산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클럽입니다. 1935년 2월 28일 결성하고, 5월 15일 국제로타리 제2802호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뒤 평양 클럽이 빠지자, 남은 열두 클럽과 회원 682명이 1961년 7월 1일 독립 지구 375지구를 열었습니다.
다섯째
장학금은 한국전쟁 이후 전쟁고아와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이어졌습니다. 1993년부터 2018년까지 알로이시오 고등학교 관현악단을 후원했고, 2026년에는 마리아수녀회의 노인복지에 다시 함께합니다. 범어사 앞 나무 700그루와 남구 용호동 유엔기념공원 조경의 일부도 이 클럽의 일입니다.
- 4만 6천+
- 200여 나라에서 모이는 로타리클럽
- 99.9%
- 물러간 소아마비. 풍토병으로 남은 나라는 둘입니다.
- 21억 달러
-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회원이 보탠 기부
- 1935
- 부산 로타리클럽이 결성한 해. 대한민국에서는 경성 다음입니다.
- 682명
- 1961년 7월 1일, 375지구를 연 열두 클럽의 회원
